나의 이상하고 평범한 부동산 가족 - 마민지
이 책은 다큐멘터리 '버블 패밀리'라는 작품으로 EBS 국제다큐 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작품의 배경이 된 감독이자 작가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그날은 우리 집이 망한 날이었다"로 시작하는 이 책은, 한때 강남 개발 붐을 타고 상류층의 대열에 합류했다 IMF로 갑작스레 몰락한 한 집안의 30년에 걸친 흥망성쇠를 기록했습니다.
독립 후 대학에서 공부를 하며 생활비와 월세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형편이 어려워진 부모님의 거처를 마려하기 위해 이런저런 주택 지원 사업을 알아보며 저자 역시 부동산이라는 현실과 마주합니다.
대학에서 과제로 시작한 부모님의 생애 전반을 통해 부모님이 어떻게 부동산일을 시작하게 되었으며 어떻게 많은 돈을 벌었고, 또 어쩌다 망했는지를 듣고 그 과정을 활자로, 영상으로 남겼습니다.
얼핏 가볍게 보며 넘길 수 있는 한 가족의 부동산에 대한 이야기가 사실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모든 이들이 겪고 있는 일이지요.
사기위한 집이 아닌 살기 위한 집은 사람이 생존하기 위한 필수적인 안전망인 의, 식, 주 중에 하나입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는 그 안전망을 스스로 준비하거나 나의 가난을 증명해야 최소한의 안전망에 기댈 수 있습니다.
가족을 부양할 능력이 없는 가부장은 미덕이 없는 존재가 되었고 내가 돈 때문에 경험하는 일들이 부모님의 무능력 탓이라 생각했다는 저자의 글에 오늘 하루도 마음을 다잡고 새벽 출근길에 나섭니다. 가족이 돈 때문에 마지못해 경험해야 하는 일이 없도록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이야기를 위트있게 풀어내 열차가 목적지에 도착하는게 아쉬울 정도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책 속에서
아빠는 내일 아침 관리사무소 문이 열리는 대로 밀린 돈을 모두 낼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텔레비전이 켜지지 않는 거실에선 가족들끼리 할 일이 없었다. 아빠는 일찌감치 안방으로 들어갔다. 엄마는 냉동실에 있던 음식들을 급한 대로 아이스박스에 옮겨두었다. 화장실에 초를 가지고 들어가 세수를 하던 나는 혹시 귀신이 나올까 무서워 엄마에게 옆에서 계속 말을 걸어달라고 했다. 자기 전 엄마와 함께 침대에 누워 바라본 보름달은 평소보다 훨씬 밝아 보였고, 달빛이 비치는 집 안 풍경은 낯설었다. 그날은 우리 집이 망한 날이었다.